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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바이든 정부의 퇴직연금 개혁과 시사점
2023 07/24
미국 바이든 정부의 퇴직연금 개혁과 시사점 2023-15호 PDF
요약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변화로 평가받는 바이든 정부의 2022년 퇴직연금 개혁은 2006년 운용 개혁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장수위험관리와 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두고 있다. 월연금수령액 고지 의무화, 종신연금 편입 유인 확대, 종신연금사업자 수탁자책임 면제, 최소의무인출완화 등은 우리나라 연금화 논의가 IRP 인출 제한에 머물지 않고 보다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또한 시간제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 대폭 허용, 신규 401(k) 강제 자동가입제도, 고용주에 대한 전폭적인 세제혜택 등은 우리나라 사각지대 해소정책에서 가입요건 완화와 고용주 보상의 병행 필요성을 함의한다. 한편 미국의 연금개혁 경험은 운용 개혁의 선행적 성공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미국이나 한국 같은 임의 제도 아래서는 운용수익률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연금화와 사각지대 해소정책은 동력을 가질 수 없다. 아울러, 사회보장기금 고갈과 고령화, 인플레이션으로 높아진 노후 불안도를 정치적 합의가 어려운 공적연금 개혁 대신 초당적 지지가 가능한 퇴직연금 개혁에 동력으로 활용하며 퇴직연금에서 먼저 비전을 제시하는 미국의 연금개혁전략은 우리나라 연금개혁 방법론과 관련하여 시사점을 준다.
알다시피 미국은 퇴직연금 소득대체율(42%)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퇴직연금 강국이다. 높은 수익률이 높은 소득대체율로 이어지는 제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퇴직연금 개혁은 계속되고 있다. 멈추지 않는 미국의 연금 개혁 속에서 현재 영미형 연금제도가 직면한 개혁 기조와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최근 바이든 정부의 퇴직연금제도 개혁은 영미형 퇴직연금제도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1. 개혁 배경과 방향

미국에서 퇴직연금 개혁은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개혁과 달리 정파를 넘어 대체로 초당적 지지 속에 이루어진다. 바이든 정부의 퇴직연금 개혁 SECURE 2.0 of 2022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개혁의 기조에서 지난 정부와의 연속성과 정합성이 확인된다. SECURE 2.0이라는 닉네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바이든 정부의 퇴직연금 개혁은 트럼프 정부의, 그렇지만 의회 다수당이던 민주당의 연금개혁 기조가 강하게 반영된 SECURE 1.0을 확대 강화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개혁안에서 수익률 제고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높은 소득대체율이 말해 주듯 오랜 기간 다듬어진 기금형 지배구조와 10여년간 운영된 디폴트옵션으로 DC형이 DB형에 대해 가지던 상대적 수익률 핸디캡은 극복한 것이다. 그 때문에 퇴직연금 개혁은 자연스럽게 가입 사각지대 해소와 장수위험 관리에 맞추어져 있다. 이 중에서 장수위험 관리는 호주, 영국 등 영미형 퇴직연금이 공통으로 직면한 난제인 반면, 가입 사각지대 이슈는 의무가입의 호주나 자동가입의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처럼 임의 가입을 택한 미국에 고유한 의제라고 할 수 있다.

초당적인 퇴직연금 개혁이 두 정부에서 연속으로 일관된 기조 아래 지속되고 있는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보장기금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처럼 고갈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퇴직연금과 달리 개혁을 위한 초당적 공조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부과방식 공적연금인 사회보장기금의 고갈 시점이 2030년대 중반이라는 재정추계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부도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팬데믹 이후의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2022년 자산시장 폭락으로 사회보장기금의 고갈이 당겨지고 퇴직연금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등 저축갭(savings gap)이 확대되고 장수위험에 대한 불안도가 높아졌다.

둘째, 그럼에도 401(k)로 대표되는 미국 퇴직연금은 연금자산의 효율적 운용에 최적화된 모델이지 본래 장수위험 관리에는 많은 약점이 있는 제도이다.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평생소득(lifetime income)을 위해 연금화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도적으로는 연금자산이 생활자금으로 소진되지 않도록 조기 일시금 인출에 대해 페널티를 부과하는 최소개입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식의 연금화 의무화를 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런 정책 흐름이 여전히 401(k)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장수위험 관리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2010년대 들어 강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며 바이든의 퇴직연금 개혁에서도 중요한 특징을 구성하고 있다.

셋째, 미국 퇴직연금의 성과가 미국민 전체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사적부문 근로자 중에서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 비중은 2022년 기준 52%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미국은 퇴직연금 도입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기 때문에 고용주가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야 해당 사업장 근로자가 가입할 수 있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2022년 기준 전체 사적부문 근로자의 69% 수준이다. 즉, 많은 고용주들이 아직까지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고, 고용주가 퇴직연금을 도입한 경우에도 많은 근로자가 가입(take-up rate 75%)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사각지대 해소에 맞춰질 수 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사각지대 해소와 장수위험 관리 등을 위해 SECURE 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를 개선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사실 SECURE 2.0의 제도 개선 항목은 조문으로 92조에 걸쳐 광범위하기 때문에 사각지대 해소와 장수위험 관리 주제로 분류되지 않는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2. 가입자 요건 완화 및 세제혜택 확대

가입제도 관련 가장 큰 변화는 시간제 근로자(hourly employee)의 가입 허용이다. 앞서 근로자의 가입률이 52%에 머문 것도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시간제 근로자(노동부, 2021년 16세 이상 근로자의 55.8%)는 퇴직연금에 가입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도 개혁 대상은 파트타임 근로자계약 중 어디까지를 연금가입 대상자로 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SECURE 1.0에서는 소위 장기파트타임근로자로 범위를 넓혔다. 즉, 기존의 12개월 연속 1,000시간 근로 요건에서 3년 연속 500~999시간 근로 요건으로 완화한 것이다. 그리고 SECURE 2.0은 이 요건을 한층 완화하여 21세 이상의 근로자 중에서 2년 연속 500시간 이상 근로를 한 경우 세제적격 퇴직연금에 가입을 2025년부터 허용하도록 했다. 비교적 단기의 시간제 근로자도 포함되도록 한 것이다.

둘째, 시간제 근로자로 가입 요건을 확대함과 동시에 2006년 도입한 자동가입제도(autoenrollment)를 고용주의 자율 도입에서 의무 도입으로 전환하였다. 사실 자동가입 강제는 민간 자율을 중시하는 미국 시장환경에 볼 때 매우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강제 자동가입제도는 2025년 이후 고용주가 신규로 설립하는 401(k) 대상 근로자들부터 적용하게 되며, 기존 퇴직연금은 해당하지 않는다. 자동가입제도에 따라 고용주는 임금의 3~10%를 자동으로 근로자 퇴직연금계좌로 기여하게 된다. 다만 근로자는 자동가입으로 납부된 기여금에 대해서는 불이익 없이 탈퇴(opt-out)할 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근로자의 세제혜택 기여 한도를 높였다. 원래 기여금은 매년 소득공제와 일부 자격자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는데, SECURE 2.0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저축갭 확대를 우려하는 50대 이상에 주어지는 추가(catch-up) 납입한도를 2025년부터 10,000달러로 확대하고, 매년 인플레이션에 연동하여 상향하도록 했다. 또한 연봉이 145,000달러 이상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ISA와 유사한 Roth IRA로 추가 납입을 허용하여 세제혜택을 누리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고용주가 근로자의 연금 기여금에 매칭을 할 수 있는 대상을 학자금대출(student loan) 상환까지 확대하였다. 이는 MZ세대 근로자들이 학자금대출 상환 부담 때문에 퇴직연금 기여금에 소극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이다. 앞으로는 MZ 근로자가 급여 일부로 학자금대출을 상환하는 경우에도 고용주는 상환액을 적격연금 기여금으로 간주하여 퇴직연금 매칭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MZ 근로자의 연금자산 축적을 촉진할 수 있게 되었다.


3. 401(k) 신규 도입 고용주에 대한 인센티브

앞서 가입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도입한 시간제 근로자 가입 허용, 강제 자동가입제도는 근로자에게는 편익이지만 고용주에는 상당한 부담과 비용일 수 있다. 따라서 SECURE 2.0은 민간 자율을 중시하는 미국의 정책 환경에 따라 고용주에 대해서도 퇴직연금 관련 비용을 줄이도록 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퇴직연금을 신규로 설립한 고용주의 비용 세액공제(tax credit)이다. 고용주에 대해 정부가 비록 직접 현금 지원을 하지는 않지만 세액공제를 통해 비용을 보전해 주고 있다. 세액공제 대상은 고용주 매칭과 운영비이다. 먼저, 운영비의 경우 SECURE 2.0 이전에도 근로자가 100인 이하인 고용주에 한 해 퇴직연금 도입 첫 3년 동안 퇴직연금 운영비의 50%까지 연간 5,000달러 한도로 세액공제를 해주었는데 SECURE 2.0은 2023년부터 5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는 연간 5000달러 한도 내에서 퇴직연금 신규 설립 첫 3년 동안 운영비의 100%를 세액공제해 주도록 했다. 51~100인 근로자 사업장은 이전과 동일하다.

둘째, 50인 이하 퇴직연금 신규 도입 고용주를 위해서는 근로자에 대한 고용주 기여금(매칭 혹은 Roth IRA)에 대해 근로자당 최대 1,000달러까지 세액 공제를 허용했다. 설립 후 2년까지는 근로자당 최대 1,000달러까지 100% 세액공제 해주고, 3년차에는 75%, 4년차에는 50%, 5년차에는 25%를 세액공제 해주게 된다. 51~100인 근로자를 가진 고용주의 경우 50명을 초과하는 근로자당 2%p씩 세액공제한도가 줄어들며, 10만달러 이상의 임금 근로자의 경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1)


4. 장수위험 관리 유인 강화

장수위험 관리는 가입 사각지대 해소와 함께 SECURE 법이 강조하는 제도 개혁의 방향인데, 크게 세 가지 개혁안이 주목할 만하다. 첫째, 근로자가 스스로 장수위험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정보는 노후에 필요한 생활비 규모와 실제 적립한 연금자산을 노후에 월소득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미국도 한국처럼 사회보장기금의 경우 노후에 얼마나 받는지 정보가 제공되지만, 퇴직연금의 경우 그런 정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SECURE 1.0에서 도입한 제도가 연금수령액 공지제도이다. 모든 연금사업자들은 근로자별로 현재의 연금자산 축적액과 그것을 종신연금(lifetime income)으로 환산한 월 추정연금수령액을 개별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공지해야 한다. 일종의 알람기능을 의무화한 것으로 연금자산 축적과 장수위험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운영하는 연금포탈보다 알람기능으로서 실효성이 매우 클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적격종신보험(QLAC) 제도를 확대했다. QLAC는 퇴직연금에 있는 펀드를 보험회사가 판매하는 연금(annuity)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연금 계약으로 2014년부터 법 개정으로 도입하였다. SECURE 2.0은 사회보장기금 위기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에 따른 노후 불안 확대에 대응하여 이전 한도를 20만달러로 확대하는 동시에 전체 연금 자산에서 QLAC 이전 한도인 25% 룰을 폐지하였다. 이 같은 QLAC 한도 확대는 장수위험 관리라는 정책 목적으로 보면 의미 있는 개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제도적으로는 큰 논란 거리를 만들었다. 수익률 관점에서 보면 QLAC 확대가 수탁자책임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ECURE 1.0은 QLAC를 공급하는 보험회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투자상품과 달리 수탁자책임을 적용하지 않도록 면제규정(safe harbor)을 둔 것이다. 생애소득을 강화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기도 하나, 수탁자책임을 외면한 데 대해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비판적이다.

마지막으로 최소인출제도(Required Minimum Distribution: RMD)를 완화했다. 미국은 퇴직연금을 59.5세부터 자유롭게 가산세 없이 인출할 수 있지만, 일정한 연령(기존에는 70.5세, SECURE 1.0에서는 72세)부터는 의무적으로 최소 금액을 인출(일시금 혹은 연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때부터는 추가 적립도 허용되지 않는다. 제도의 취지는 과도한 부의 세대 이연방지와 세수 등인데, SECURE 2.0은 의무 인출 연령을 2023년부터 73세, 2033년부터 75세로 늦추었다. 아울러 RMD를 규정대로 수령하지 않을 경우 가산세도 50%에서 25%, 그리고 요건에 정한 때까지 수령한 경우 10%까지 인하하도록 했다. 취지는 그만큼 근로와 기여금 적립을 지속하여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저축갭과 장수위험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5. 유동성정책 발상 전환: 비상저축계정 도입

SECURE 2.0에서 특이한 개혁 포인트를 들라면 일시금 인출을 완화한 규정일 것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연금자산의 조기인출을 제한해 온 것이 미국 정부의 기본 정책 기조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기인출에 대해 가산세를 부과하고, 주택구매 등 일부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우리나라처럼 긴급인출제도에 따라 가산세 없는 조기인출을 허용하였다. 대신 미국 가계의 일시적인 유동성 수요를 연금자산을 통해 조달할 수 있도록 연금 대출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견지해 왔고, 실제 연금 대출은 우리나라와 달리 보편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SECURE 2.0에서 조기인출 관용정책으로 선회한 배경은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가계의 유동성 압박이 높아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관용정책의 핵심은 조기 인출의 무분별한 허용보다는 비상저축계정(Emeregncy Savings Acount: ESA)라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있다. 퇴직연금을 가입한 근로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인출 할 수 있는 퇴직연금 연계 저축계정이다. 고용주가 반드시 개설할 의무는 없으나 DC형 근로자 급여의 3% 이내에서 기여할 수 있으며 고용주는 세제적격 매칭이 가능하다. 다만, 기여는 세전이 아닌 세후 기여금으로 근로자는 비과세 혜택을 받게 되며, 계정 잔고 한도는 2,500달러이다. 근로자는 4회까지 수수료 없이 자유 인출이 가능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금 조기 인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연금 자산을 지키기 위해 연금자산이 아닌 비상저축에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일종의 역발상 정책이다. 그 외에도 출산 등 긴급 자금수요에 대해서는 연금계좌로부터 연간 1,000달러까지 가산세 없는 조기인출을 허용하는 완화정책을 도입했다.


국내 시사점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영미형을 향하고 있지만 깊이나 역사에서 미국과 격차가 있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와 노후소득 환경 악화를 고려할 때 퇴직연금제도의 압축 발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앞서 살펴본 미국 제도 개혁의 흐름과 내용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혁의 우선순위에 주목하자. 미국은 수익률 제고를 위한 운용 개혁을 먼저하고 가입 및 연금화 개혁이 뒤따르고 있다. 호주 같은 의무 가입 국가라면 순서는 의미 없을 것이나, 임의 가입 제도의 미국과 우리나라는 순서가 중요하다. 높은 수익률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져야 사각지대 해소/연금화 정책이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아도 퇴직금이 임금상승률 만큼 매년 수익을 내는 우리나라의 경우 운용 개혁을 통한 수익률 우위 입증이 퇴직연금 확산의 전제 조건이다. 낮은 수익률로는 사각지대 해소를 설득할 수 없고, 연금화의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6개월 수익률이 과거 연간 수익률보다 갑절 이상 높은 점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디폴트옵션 원리금보장상품 비중이 디폴트옵션 도입 이전 DC와 IRP 원리금보장상품 비중보다 높은 점은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 시장 스스로 압도적인 운용 역량을 통해 수익률 신뢰를 회복하는 시장규율의 중요성이 절실한 시점이며, 정책당국은 한국형 디폴트옵션의 몇몇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제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장수위험 관리를 위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다. 미국 연금화정책은 인출제도나 상품 단위 (종신연금, TDF)에 머물지 않고 근로자 고지제도나 긴급저축제도 등 종합적이다. 특히, 연금사업자에 대한 연금수령액 고지 의무화는 근로자 각성을 통해 더 많은 자산을 쌓고 더 오래 은퇴소득화를 유도하는 의미있는 넛지(nudge)로서 평가할 만하다. 우리나라도 감둑당국 포탈사이트가 아닌 연금사업자의 운용통지서에 수익률과 예상 월연금수령액을 함께 고지한다면 근로자의 연금운용과 연금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TDF에 연금상품을 편입하거나, 은퇴 후에도 자산배분을 유지하는 TDF 글라이드패스 등의 상품 혁신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연금자산을 지키기 위한 역발상 정책인 비상저축계정 역시 이직 과정에서 연금자산을 대부분 인출하는 우리의 실정을 고려할 때 적용 가능성과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퇴직연금 개혁은 공적연금과의 개혁 우선순위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정치적 합의가 어려운 사회보장기금 개혁 대신 초당적 합의가 용이한 퇴직연금 개혁을 결과적으로 먼저 이루었다. 미국 사회보장기금은 비록 부과식 기금으로 고갈시 충격이 우리나라 국민연금보다는 덜하지만, 고갈 시점은 우리나라보다 빠른 2030년대 중반이다. 시급성 면에서 우리나라 못지않은 미국은 공적연금 고갈과 그에 따른 노후소득 불안을 공적연금이 아닌 퇴직연금 개혁의 동력으로 활용한 것이다. 퇴직연금 개혁이 노후소득 안정에 주는 기여도가 사회보장기금에 못지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공적연금이 지속적으로 소득대체율을 줄여왔기 때문에 퇴직연금의 노후소득 안정 효과는 점점 커질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계효과가 큰 퇴직연금 개혁을 공적연금 개혁보다 덜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개혁의 우선순위는 효과성과 실행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며 전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1) 참고로, 우리나라는 운영비의 경우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에 한해 도입 초기 3년 동안 근로자당 기여금의 10%를 지원해 주고 있으며, DC형 기여금 세제 혜택의 경우 근로자가 아닌 고용주가 100% 손비인정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