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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태경제학 관점에서 본 디폴트옵션의 도입 필요성
2020 08/17
행태경제학 관점에서 본 디폴트옵션의 도입 필요성 2020-18호 PDF
요약
해외에서는 디폴트옵션제도가 DC형 가입자들의 행태적 편의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디폴트옵션의 도입 필요성이 오랫동안 논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DC형 가입자들의 행태적 편의로 인한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이에 본고는 행태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디폴트옵션의 도입 필요성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도입 이후 지금까지 원리금보장형 상품 위주로 운용되고 있다. 그 주요한 이유로는 도입 초기 운용규제나 고금리 등도 있지만 DC형 가입자들이 복잡한 투자운용, 장기투자 전략의 부재 등으로 인해 행태적 편의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행태적 편의를 완화하는 방안으로는 디폴트옵션이 적절할 수 있다.

또한 저금리 기조로 많은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실적배당형 상품을 고려하거나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행태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장기투자 운용의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해 디폴트옵션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퇴직연금 운용을 지시하지 않은 경우 지정된 투자운용 상품이 자동으로 선택되는 제도인데, 특히 행태경제학적인 근거를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는 DC형 가입자들의 행태적 편의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인 제도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디폴트옵션의 도입 필요성이 오랫동안 논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DC형 가입자들의 행태적 편의에 따른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이에 본고는 행태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디폴트옵션의 도입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운용의 현황

2019년 우리나라 DC형 퇴직연금 운용현황을 보면 80.5%가 원리금보장형이고 9.1%가 실적배당형, 나머지가 대기성자금이다. 실적배당형의 경우도 채권혼합형 및 채권형이 70.7%로 보수적인 운용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퇴직연금 운용은 20~30년간 퇴직급여를 적립하여 노후자금을 준비하는 투자전략으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국내외 주식과 채권이 각각 38.1%와 48.9%이며 대체투자가 12.4%인 국민연금과 비교해보면 매우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나 주요 선진국 DC형 퇴직연금의 운용에서도 주식의 비중이 20~60% 사이로 높고 채권 및 대체투자 등 자산의 배분이 다양하다. 여기서 자산배분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자산운용 전략에 따라 장기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기준 퇴직연금 5년 연평균 수익률은 1.92%인 반면 2018년 기준 국민연금의 5년 연평균 수익률이 4.11%를 보이고 있다. 국내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이나 해외 퇴직연금과 특별히 달라야 할 운용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 퇴직연금의 운용이 현재와 같이 형성된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 도입 초기 운용규제 및 고금리에 따른 영향

1961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도입된 퇴직금제도는 기업들의 퇴직금 체불이나 과도한 중간정산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퇴직금제도를 보완하고 선진국과 같은 다층의 연금체계를 마련할 목적으로 2005년 12월 퇴직연금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은 고용기간 적립한 퇴직급여를 퇴직 시에 지급하는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 DB)이나 매년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DC)을 채택하게 된다. 특히 DC형 가입자는 퇴직 시까지 매년 지급되는 퇴직급여를 직접 운용해야 하므로 장기투자의 계획과 운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도입 당시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는 기존의 퇴직금제도를 이어받은 관계로 장기운용의 전략이나 성과보다는 안전한 적립금 관리가 더 강조되었다. 이는 주식형 펀드나 주식이 포함된 혼합형 펀드가 DC형 가입자들이 투자할 수 없었던 운용규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도입 초기 DC형 가입자들은 운용규제적인 측면에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퇴직연금 도입 초기 높은 시장금리로 인하여 그 자체로도 경쟁력이 있었다. 시장금리는 2007~2008년에 무려 5~6% 사이에 있었고 2010년대 초반까지도 3%대 중반이었다. 이로 인해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고금리에 안전성을 제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DC형 가입자들은 자연스럽게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대해 높은 선호를 보였고 모든 금융업권이 고금리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중심으로 경쟁하였다. 여기에 업권 간 경쟁에서 우위를 보인 은행의 높은 시장점유율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을 높인 또 다른 요인이다.
 
자산운용 규제가 완화되고 시장금리도 낮아졌으며 자사 상품의 판매를 규제하는 경쟁정책 등 현재의 퇴직연금 시장은 도입 초기와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C형 가입자들이 원리금보장형 상품 위주로 선택하는 현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아래에서 제시하는 행태경제학적인 설명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행태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퇴직연금의 운용 현상

우리나라 퇴직연금 원리금보장형 상품 위주의 운용을 행태경제학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퇴직연금제도 도입 초기에 DC형 가입자들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대부분 선택하면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일종의 표준처럼 인식될 수 있다. 직장 내 선배 및 동료들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주변 지인들의 이와 같은 선택이 안전하고 더 적합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동료효과: peer effect).

둘째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장기투자에 대한 경험이 없고 재무적 지식도 부족하여 투자에 대한 명확한 선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강한 선호의 부재: unstable and undefined preferences). 이러한 이유로 퇴직연금 판매직원의 추천이 가입자의 의사결정에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판매직원은 위험한 투자상품보다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전한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것이 부담이 적고, 단순한 펀드 운용과 달리 장기 노후자금을 위한 추천이라서 위험이 높은 투자 상품을 선뜻 권하기도 어렵다. 또한 DC형 가입자가 실적배당형 상품에서 선택하려고 하더라도 투자운용의 복잡성과 부담으로 인하여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선택과부하: choice overload).

셋째는 DC형 가입자들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일단 선택하게 되면 이를 잘 조정하지 않는다(미루기와 관성: procrastination and inertia). 실제로 퇴직연금 도입 초기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한 이후 운용상품을 조정하지 않은 DC형 가입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높아지는 효과도 매우 클 것이다.

 
디폴트옵션 도입의 필요성

DC형 가입자들은 복잡한 투자운용, 장기투자 전략의 부재 등에 행태적 편의가 더하여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더 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행태적 편의를 고려한 방안으로 디폴트옵션이 적절할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DC형 가입자들은 위험상품의 추천을 받기 어렵거나 주변 지인들의 선택을 추종하는 경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경우 디폴트옵션은 일종의 인증받은 추천으로 인식되는 정도에 따라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원리금보장형 상품 위주의 국내 퇴직연금 운용은 장기에 걸친 연금투자로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저금리 기조로 이러한 상품의 수익률은 인플레이션을 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많은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실적배당형 상품을 고려하거나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장기투자 운용이라는 복잡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이를 꺼려할 것이다. 이러한 행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디폴트옵션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미국이나 호주, 스웨덴, 영국 등의 주요 국가들은 행태적 차원에서 디폴트옵션을 성공적으로 경험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국가들에서 디폴트옵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우리나라 정부당국도 노후자금 대비를 위해 퇴직연금의 안전한 관리보다는 수익성 제고를 지향하고 있다. 아마도 디폴트옵션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본다. 금번 국회에서는 디폴트옵션제도의 도입 논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