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퇴직연금 적립금의 연간 수익률은 퇴직연금 연금 수익률 통계가 작성·발표된 이후 가장 낮았기 때문에 많은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1) 수익률과 함께 발표된 연금 수급자 비율(2.4%)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퇴직연금의 현 상태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퇴직자들이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는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연금으로 받기에 너무 작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퇴직연금 적립금이 작아지는 요인의 하나가 근로자의 퇴직 전 중도인출이다. 중도인출의 주요 사유는 주택구입, 전세금 지급, 의료비, 파산 등인데 의료비나 파산 등은 가입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므로 주택 관련 중도인출의 허용 여부가 주요한 쟁점이다.
부동산은 연금 자산의 대안투자 대상의 하나로서 관심을 받아왔고, 주택연금이 도입되면서 부동산이 직접 연금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인출되어 주택 구입, 전세 자금으로 사용되면서 부동산이 연금의 적립 단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연금의 적립, 투자, 인출 과정에서 아파트로 대표되는 주택의 영향이 커졌다.
퇴직연금의 도입 목적이 퇴직소득의 안정적 확보이며, 퇴직소득은 퇴직적립금에 비례한다. 퇴직적립금을 감소시키는 퇴직연금 중도인출을 줄이기 위해 중도인출에 대한 증세 또는 법적 금지 등이 고려될 수 있지만 쉬운 선택은 아니다.
퇴직연금 제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연금 제도 전반에 걸친 균형적 사고와 일관된 연금정책도 중요하지만, 주택 정책도 과거 어느 때보다 연금 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017년 중도인출 인원은 전년대비 29.2% 증가한 52,000명이고, 인출금액은 38.4% 증가한 1조 7천억원에 달하였다.2) 중도인출 사유 중 주택 구입이 인출 인원의 41.3%, 인출금액의 41.8%로 가장 많고, 그 외 장기 요양, 주거 임차, 회생 절차 개시 등의 순이었다.
인출 인원 기준으로는 30대가 전체 인출 인원 중 46.2%로 가장 많고, 인출금액 기준으로 40대가 전체 인출금액 중 36.5%로 가장 많았다. 중도인출 인원 기준 20대는 주거 임차, 30대와 40대는 주택 구입, 50대 이상은 장기 요양 목적의 중도인출이 가장 많았다.
연도별 중도인출액을 보면 2015년 9,648억원, 2016년 1조 2,318억원, 2017년 1조 7,046억원으로 증가하였다. 1인당 중도인출액은 2015년 3,436만원, 2016년 3,073만원, 2017년 3,292만원이다.
위의 중도인출액은 재직중인 근로자들의 중도인출 금액이며, 근로자의 전직 시의 퇴직연금 제도 밖으로 인출되는 퇴직일시금을 포함하면 중도인출 규모는 훨씬 커진다. 예를 들어 2017년 퇴직급여 지급액은 16조원이었으며, 55세 이상 퇴직자들이 받은 퇴직급여는 약 5조억원이었다. 따라서 11조억원 가량은 55세 미만의 근로자들이 받은 일시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중에 중도인출 금액으로 기록된 1.7조원을 제외한 9.3조원 가량은 근로자들이 전직 시에 일시금으로 인출한 금액으로 추정할 수 있다. 55세 이상 퇴직자가 수령한 퇴직일시금 3.9조원도 퇴직소득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중도인출은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도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DC) 퇴직연금 특히 401(k)형 퇴직연금이 확대되면서 중도인출이 퇴직자산을 감소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도인출 규모는 매년 퇴직자산의 1.2% 정도인데, 중도인출 효과가 근로자가 퇴직할 때까지 30년 정도 누적되면 퇴직 시점의 퇴직자산이 25% 정도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3)
미국 퇴직연금의 경우 중도인출의 경로는 재직 중 인출, 전직시 인출, 대출 등 크게 세 가지이다. 재직 중 인출이란 가입자가 재정적으로 중대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적립금을 인출하는 것인데 59.5세 이전에 인출할 경우 10%의 추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4) 59.5세를 넘은 근로자가 일을 계속할 경우 퇴직연금 적립금을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로 이전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때 30% 정도의 인출액이 IRA로 이전되지 않는다.
근로자들이 회사를 옮길 때 그들은 기존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일시금으로 받거나, 기존 계좌에 유지하거나 또는 새로운 직장의 퇴직계좌 또는 IRA로 옮길 수 있다. 이때 59.5세 이하의 근로자가 인출하는 일시금에는 10%의 추가 과세가 부과된다. 전직시 중도인출 금액의 규모가 중도인출 경로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체 퇴직자산의 0.5%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 90% 가량의 401(k)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5) 대출은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1년에서 5년 내에 상환하여야 한다. 대출이 가능하면 현금이 필요한 근로자들도 퇴직연금에 계속 가입하며, 적립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대출금이 상환되지 않을 경우 일시금으로 지급된 것으로 간주되어 소득세와 10%의 추가 과세 대상이 된다.
전반적으로 볼 때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 DB)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은 상대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6) 이에 비해 DC형 퇴직연금의 적립금은 여러 경로를 통해 중도인출될 수 있으며 중도인출을 억제하는 주요 수단은 10%의 추가 과세이다.
중도인출이 퇴직자산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우리나라 퇴직연금 제도에 내재한 기본 모형을 살펴보자. 현행 퇴직연금 제도는 기존의 퇴직금 제도를 이어 받아 퇴직자가 최종연도의 월급여와 재직한 근무연수를 곱한 금액을 퇴직급여로 받도록 설계되었다(DB형 퇴직연금). 예를 들어 25세 입직하여 30년 근무한 퇴직자는 최종 급여 30개월분을 퇴직급여로 받는다. 이는 매년 1개월 급여를 퇴직계좌에 적립하고(DC형 퇴직연금), 임금상승률과 동일한 투자수익률로 운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개인연금으로 1개월분 급여를 적립하고7), 국민연금에 납입하는 9%의 납입액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일반 근로자는 소득의 약 23%8)를 납입하여 퇴직후 소득을 준비하고 그 나머지 77%의 소득으로 세금, 주택 구입, 교육비, 기타 생활비를 충당하는 셈이다.9) 이 모델이 유지되려면 연금 납입액으로 퇴직 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연금 납입액 이외의 소득으로 퇴직 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델은 주택과 관련하여 퇴직 전 주택을 구입, 소유하고, 퇴직 후 적립한 연금을 인출하는 생활을 상정한다. 이런 틀에서 볼 때 퇴직연금 중도인출은 연금 납입액 이외의 소득으로 퇴직전 생활에 필요한 금액을 충당할 수 없어 퇴직자산을 미리 인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도인출 시 근로자들의 적립금 중 인출 비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액 인출을 가정할 경우 그 영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10년 재직한 근로자의 중도인출은 퇴직자산의 ⅓에 해당하며, 20년 재직한 근로자의 중도인출은 퇴직자산의 ⅔에 해당한다. 퇴직연금 중도인출자의 연령을 보면 30대가 가장 많은데 이들의 경우 중도인출 후 퇴직자산의 적립 기간이 ⅔로 짧아지며, 40대의 경우 ⅓로 짧아진다. 퇴직자산의 적립 기간이 짧아지면 그에 비례하여 퇴직자산도 줄어든다.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를 보면 장기요양, 파산선고, 회생절차 등은 예측 불가한 사유이므로 이에 대한 제한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중도인출과 관련하여 쟁점은 주택구입과 주거임차 비용 충당 목적의 중도인출 허용 여부이다.
중도인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사례처럼 중도인출에 추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낮은 세율로 과세되던 중도인출 등 퇴직일시금에 대해 지속적인 증세 조치가 취해졌다. 연금 선택을 장려하기 위해 퇴직일시금에 대한 세금을 상당히 늘렸는데도 연금을 선택하는 비율이 크게 늘지 않았다. 추가 과세 방식이 그동안 지속적 증세로 인해 저항이 따를 수 있고, 실질적이 효과도 없이 퇴직자의 부담만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금 제도의 안정성만을 고려한다면 중도인출 금지가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반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주택 소유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고, 전월세 가격의 상승률이 매우 높아 임금 등 통상적인 소득으로 주택 관련 비용 조달이 어려울 때 조달방법 중의 하나를 막는다면 근로자의 불만이 높아질 수 있으며, 퇴직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과 아파트 가격을 중심으로 한 주택 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주택 구입이 보다 나은 투자 대안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주택연금이 도입된 이후 퇴직연금 적립금을 연금으로 전환하는 방식과 함께 주택 구입 후 주택을 연금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전통적 연금 방식만이 옳은 방법이라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퇴직자의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고령자에 대한 실질소득을 지원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2007년 주택연금이 도입되었다. 주택연금을 고려할 때 앞서 제시했던 연금 모델에도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다. 주택연금이 없을 때는 소득을 적립하고, 적립금을 연금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주택연금이 존재할 때는 주택을 구입하고 그 주택을 연금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추가된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퇴직 시에 일시금을 지급한다. 따라서 주택연금을 고려하면 퇴직일시금을 연금화할 때도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일시금을 바로 연금으로 전환하거나, 퇴직일시금을 주택 구입에 보태어10) 추후에 주택연금을 받는 방식이다.
추가 과세나 중도인출 금지 등 대응조치가 쉽지 않은 이유는 퇴직금 제도의 영향이다. 퇴직금 제도에서 일시금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퇴직연금이 도입되면서 이에 대한 제약이 늘어나고 세금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근로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외국의 경우 퇴직연금이 도입될 때는 급여 총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퇴직연금에 대해 다양한 제약을 도입하기 상대적으로 용이하며, 근로자 입장에서도 수용도가 높아진다. 이에 비해 우리의 퇴직연금 제도는 퇴직금 제도를 그대로 받아 근로자 입장에서 볼 때 급여 총액은 똑같다. 따라서 퇴직연금 제도에 새로운 제약을 추가하기 어렵다. 이러한 기본적 한계 속에서 주택관련 중도인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려면 주택정책이 연금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는 시대이므로 향후 연금 정책에 근로자의 주택 소유 욕구와 주택 관련 변수들이 반영되어야 한다.